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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택시운전사의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그는 누구일까?

얼마 전 개봉한 택시운전사가 예상대로 많은 인기를 얻으며 흥행몰이 중에 있는데요. 하지만 우리는 영화를 볼때 흥행도 흥행이지만 어느정도 영화의 주제라던가 혹은 특정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번에 알아볼 내용은 택시운전사 영화가아닌 영화 속에 등장한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에 대해서 입니다.


          (좌)실제 힌츠페터                            (우) 힌츠페터 역의 토마스 크레취만


●먼 나라의 일에 망설이지 않은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1963년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 함부르크 지국의 방송 카메라맨으로 입사한 위르겐 힌츠페터는 1967년 초 홍콩의 동아시아 지부로 발령받아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기도 한 베테랑 기자입니다. 그런 그가 73년 일본 도쿄 지국에서 근무하던 중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고 주저없이 이를 취재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당시 한국의 외신기자들은 해외홍보원에 취재 목적을 알린 뒤 프레스카드를 발급 받아야만 취재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그것이 달리 없었던 힌츠페터에게는 더욱 위험한 취재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택시운전사의 장훈 감독은 그가 죽기 전 영화의 취재를 위해 힌츠페터를 직접만나 광주에 가게 된 특별한 사연이 있었냐고 물은적이 있었는데 그는 "당연히 가야지, 그게 기자가 하는 일이다" 라며 주저없는 답을 들려줬다고도 합니다.


먼 나라의 일이며 본인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힌츠페터는 그러한 기자정신을 보이며 마지막까지 광주를 언급하고 지난해 1월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16년 5월 16일 본인이 원함과 달리 유가족의 뜻대로 광주의 망월동 묘지에 손톱과 머리카락만이 안장되었습니다.  





●푸른 눈의 목격자


기자라는 신념하나만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세계에 알린 그를 사람들은 푸른 눈의 목격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그때 당시의 일이 과연 어떤식으로 다른 나라에 알려졌을까 라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지금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언론의 통제와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야했던 독재정치 속에서 작게 피어오른 성냥과 같은 일을 그 누가 쉽게 취재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촬영한 필름은 '기로에 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 독일에서 수차례 방송되었으며,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외신들도 앞서 말한 영상과 함께 그 날의 일을 보도함으로써 전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택시운전사는 그럼 어떤 영화인가?



영화 택시운전사는 앞서 말한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광주까지 태워준 택시기사 김사복씨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택시운전사 김사복씨에 대한 신상도 알아내기 위해 영화감독은 노력을 해봤다고 하지만 끝내 찾지는 못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전부 실화였다는 점과 아직도 몇몇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그 날의 일이며 베테랑 배우 송강호씨가 주인공을 맡았기에 영화의 인기가 더욱 치솟고 있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저 또한 조만간 택시운전사를 보러 갈 것인데, 과연 영화의 내용은 어떤식으로 그려졌을지 정말 궁금하네요 ㅎㅎ.